퇴사 D-Day

6년의 세월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게 오늘이 온 아직 믿기지 않는 현실이니까 진지하게 레고

언젠가는 헤어지겠지 막연한 생각이 현실로 다가오는 순간은 언제나 멈출 수 없는 소름끼쳐

퇴근 의사를 밝히고 팀장들의 끊임없는 줄다리기와 대표, 부장과의 면담 등은 어느 순간 회사에 발을 담그는 아침 시간이 불편했고 화장실에서도, 식사 때도 최대한 대화 주제를 바꾸려 했던 나날들이었다.

실제 퇴근일 전 한 달 노티는 기본적인 과정이지만 이전 하루, 일주일, 2~3주 만에 나가는 분들도 많았던 뒤라 저보고 한 달 채우라고 하면 엔에취!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4주+1주 더 있고 나서는 1주일만~!
!
더~~ 1월말까지는 해야 한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고 한다.

사실 12월 마지막 주는 거의 office closing에 전 직원의 1~20%만 출근하는 그런 날들이었는데 그중에서 신입사원들은 크리스마스 전전날 출근 실화? 입사해서 화가 났는데 충분히 이해가 가는 누가 크리스마스 전전날 출근해요

누가 물어봤는데 갑자기 퇴근하냐고. 당황하고 서운하고 화가 난다고.하지만 그건 그 사람에게도 그럴 뿐, 나는 몇 년 동안 참아왔기 때문에 몇 년 동안 사직원은 오늘이다, 아니다, 아직 아니다, 조금만 참으려고 수천, 몇 만 번이고 참아주지 않았을 뿐이니까.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실로 ‘다사’다 ‘나는’이라는 말을 여기저기서 가장 많이 쓴 것 같다 퇴근 편지에도, 면담 때도,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도.일반 로컬 하우스 회사에서는 경험하는 것을 이 외국계 회사에서는 경험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나는 그런 곳에서 내가 경험하지 못한 일들을 여기서 경험한 것 같고, 굳이 경험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어려서부터 돌이켜보면, 평범하게 수능 준비를 열심히 하던 영어를 조금 더 잘하던 학생이었고, 원하던 명문대 명문의 로고를 자르고 스터디 플래너에 도배하며 미래를 그리는 미라클 모닝을 흉내내는 빛나는 소망을 가지고 살았던 학생이었다.

어려서부터 큰 관종기를 끌어안고 살았고, A형 소심함과 엄격한 가정 아래 여러모로 울고불고하며 피비린내 나는 전장을 겪으며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신문에서 미국 대학 입학/편입 광고를 보고 그날부터 아버지를 설득하는 일주일이 시작됐다.

아침에출근준비하는아버지옆에서나를보내달라나를보내준다면이것저것하겠다는공약까지세우고.아직도 콧물을 흘리며 멍한 초등학생에게 인생은 늘 바쁘게 흘러가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고 배우라며 새벽녘에 집에서 쫓아내고, 나를 키워 온 부모님에게도 바다를 건너는 타국으로 보내는 일은 여러모로 벅찬 일이었던 모양이다.

겁이 없었다.

낯선 땅에서도 친구를 사귀고, 살아남고, 자기편으로 끌어들여, 원만하게 사는 그런 오지라파였다.

그러나 늘 마음속으로 하지 못했던 말을 삼키던 겁쟁이이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1년의 준비 과정을 거쳐 미국 비행기를 탔다.

아직 기억에 남는 도미토리 입성 첫날.편입이었기 때문에 따로 OT는 참석하지 않고 방으로 짐을 가지러 갔는데 학기가 시작되기 직전이라 아이들이 이사오는 시간은 제각각이고 나의 룸메이트는 모두 정리되어 있었지만 사람은 없었다.

너무 궁금해서 걸려있는 옷을 보면 정말 화려한 옷도 있고 헐렁한 옷도 있어서 예상치 못했던 나의 룸메이트.냉장고 위의 전자레인지를 발견하고 내심 좋았던 나였지만 그런 기쁨도 잠시였을 뿐 숨가쁘고 치열한 유학생의 나날은 시작이었고 수많은 눈물과 웃음과 뻔뻔함의 4년이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유학 시절의 분류란에 회고를 한다

졸업률이 30%대인 미국 학교에서 무사히 무난한 GPA로 졸업을 하고 Non-profit organization에서 몇 달 동안 비디오 제작 인턴을 하며 무작정 홍수로 가야 한다고 떠났다.

나의 길이 있다고 느낀 뉴욕으로

자세한 뉴욕행 기와회사 합격 스토리는 다음 유학 카테코리랑에 공개한다.

한두 페이지로서 안 되니까, 일은.

아무튼 이런 일을 겪고 한국지사에 와서 온갖 산전, 논을 다시 경험한 게 벌써 6년째 나는 햄버거 내놓는 일조가 아니라 이제 막걸리 냄새가 나더니 그런 한국인이 돼 버렸다.

나쁜 건 아니지만 좋은 것만은 아니다.

그래서’나’를 잃은 듯한 이 날짜 안에 얇아 진 나는 또 어떻게 찾을 수 있나 모르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후회는 없다.

점점 나를 더 잃어버릴 수 없다 버렸으니까.

어쨌든 회사 퇴근 D-DAY는 이렇게 열렸다.

-9:30출근-9:45-10:40멤버들과 다음 목적지&, 상세하게 막연한 츄이쥬은 이야기(다 떠나고 싶어 한다)-10:45-11:15인수의 파일 정리-11:00갑자기 점심 자리 예약하려 했지만, fail-11:30점심 식사하러 일찍 출발-PM 1:15-1:40나를 만나러 온 파트너 사와서 인사 겸화-2:00-4:00인수의 파일 정리 및 토에직소 관련 문서의 제출 및 저희의 사장 인사-4:00-4:30부사 수에게 선물 전달과 이야기-5:40마지막 팀 멤버의 생일 파티를 위한 케이크 사서 파티-6:00정말 퇴근 바이

인사를 다니는데 이것이 실제의 인가고 있었다.

늘 배웅하고 내가 배웅을 받다니… 아쉽다고 말씀하신 다양한 팀장과 저희 사장들에게 감사한다.

인사만 했는데 아쉽다고 표현을 하고 주고.마지막으로 엘리베이터로 팀원들 포옹을 받고 눈물이 나는지…생각 없이 오열하고 버리고 팀 멤버의 눈에도 고인 눈물을 보니 내가 아주 사랑 받고 이렇게 깊은 정이 생각보다 강하게 느껴지는 거라고 생각했다.

다음은 더 좋은 상황에서 더 좋은 웃음으로 만나길…아무것도 모르고 미국의 물을 마신 이 완고한 사람을 꾸준히 지켜보고 가르친 것에 못내 감사이다.

물론 그 안에서 치열하게 살아남기 위해서 허우적거렸다 내가 있었다.

인간이란 정말로 이렇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으면 훨씬 격렬한 몸과 마음을 일그러지며 괴로워하는 것이든 인간의 믿음이 배신당한 것 같다고 생각하면 좋은 일이 우선 떠오르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게 된다.

나의 청춘을 다 바친 회사, 제대로 성장하는 토대가 되었지만, 그것 이외에 내가 정말 얻은 것은 무엇이었는지는 깊이 생각하고 봐야 한다.

지금 나는 새로운 스타트를 끊고 싶어.나의 길은 어디일까 나는 주위의 무서운 소리에 흔들리지 않고 정말 내가 행복하게 빛나는 곳에 갈 꺼야 그리고 그것이 나의 길임을. 신이 항상 함께 하길.